그 외

내가 선정한 세계사 7대 불가사의

박 사서 2024. 1. 29. 22:00

 

이 세상은 아무 사건이나 다르게 전개됐어도 어찌 됐을지 아무도 모르는 곳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태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건 자체가 어떤가와는 별개로 왜 그렇게 전개됐는지 이해마저 안 되는 사건들도 너무 많다. 

이번엔 그런 사건을 일곱 건만 추려보겠다. 

당연하지만 이건 내 개인적인 견해다. 

이 일곱 건 말고도 역사 속 불가사의는 산적해있다고도, 내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이 일곱 건을 세계사 7대 불가사의라 부르는 것일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무엇보다! 1976년 이후에 일어난 사건들은 논외라 치겠다. 

 

 

 

 

 

1. 1804년 미국 부통령 선거 



이건 1804년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

 

알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부통령 선거를 처음 치른 나라도 다름아닌 미국이다. 

부통령 선거까지 미국 따라하는 나라들도 그렇지만 미국은 왜 부통령까지 선거로 뽑게 한 걸까? 

어차피 부통령도 대통령이 이끄는 내각의 구성원이고 장관과 달리 명예직에 가깝다. 

대통령이 임명토록 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상황. 

 

 

 

 

 

2. 부르봉 왕정복고 

 

프랑스 혁명 이후 최초로 프랑스 왕이 된 루이 18세

 

별 거 아니라면 별 거 아니겠지만 나폴레옹 전쟁 직후 프랑스 황제를 왕으로 격하시킨 것도 뜬금없다. 

이때 자기 식민지들을 다 뺏긴 것도, 특정국에 조공을 바치게 된 것도 아닌 프랑스더러 왜 다시 왕이란 표현을 쓰게 한 건지 의문. 

 

 

 

 

 

3. 2차 국공내전 

 

 

더 정확히 말하자면 2차대전 이후 장제스의 행보. 

중공이 2차대전 직후에도 중화인민공화국을 안 세워서 2차 국공내전이 내전으로 전개된 것도 이해가 안 되지만 더 이상한 점은 장제스가 중공에게 베이징을 뺏기기 전에 사퇴해버렸다는 것이다. 

이때라도 미국에 파병을 요청해서 유엔군이 타이완을 돕게만 했어도 지면 졌지 중국 대륙 전체를 뺏기진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이땐 미국 중심 군사동맹인 나토도 들어섰을 시기다. 

625 때 한국을 도와줄 수 있었던 세력이 유엔밖에 없다고도 못하는 셈. 

 

 

 

 

 

4. 북한의 단독 남침 

 

소련이야 그렇다 쳐도 중국은 왜 625 직전에 북한과 상호방위조약조차 맺지 않았을까? 

자칫하면 북한이 망하는 걸 지켜봐야 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다. 

농담이 아니라 인천상륙 이후 유엔군의 진격 속도가 조금만 더 빨랐어도 통일은 그때 됐을 것이다. 

 

 

 

 

 

5. 사사오입 개헌 

 

'그' 논리

 

물론 이승만에게만 중임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단 헌법 3호 부칙도 자유당 독재를 위한 것이라 불리기에 부족하지 않다. 

그런데 왜 대통령 중임 제한을 완전히 없애진 않았을까? 

자유당의 다른 거물들이 이승만처럼 영구집권하는 걸 이승만 자신이 막을 이유도 없었을 거고 개헌할지를 국민투표로 정하는 시절도, 대통령 중임을 위한 헌법개정이 그 당시 대통령한텐 효력없는 시절도 아니었다. 

 

 

 

 

 

6. 한국 국무총리직 존치

 

 

국무총리직 자체도 갑툭튀란 감이 있긴 한데 박정희마저 국무총리직을 안 없앤 건 진짜 이해가 안 된다. 

이때 국무총리직을 폐지하고 부통령을 뒀으면 대통령직이 최규하에게 바로 승계됐을 테고, 박정희 자신도 자기 후임을 뽑는 보궐선거를 치를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텐데...

 

 

 

 

 

 

7. 판문점 도끼살인에 대한 미국의 대응  

 

이건 당시에 잘린 미루나무를 나중에 찍은 거

 

진짜 휴전 상태가 그렇게 유지되어왔단 것마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아니 어떻게 그런 사건에 대한 화풀이를 그 나무한테 할 수 있었던 거지? 

전쟁 재개까지 갈 것도 없이 625를 완전히 우리의 판정승으로 끝내는 조약을 맺으랬어도 꼬리를 내렸을 북한이다.

물론 패전이 나무 하나 베도록 냅두는 것과 완전히 다른 일이긴 하지만 평화조약 체결 강요나 그 나무를 베는 거나 전쟁을 각오한 대응이다.